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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646)에 자장율사가 세웠어요.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해요.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1645)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규모는 앞면 3·옆면 5칸이고, 지붕은 앞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뿐더러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계단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부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월등한 연꽃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인비구 제작 동종 - 통도사 동종

이 종은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조선 숙종12(1686)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입니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빼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해진 종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종은 유일하게 8(八卦) 문양을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큰 종으로 형태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종 몸통에 있는 사각형의 연곽안에 9개의 돌기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종은 중앙에 단 한 개의 돌기만 새겨 둔 점에서 그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기이며, 절의 동남쪽 약 4지점에 서 있습니다. 국장생이라 하는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 하는 의미로, 거친 자연석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설과 동반해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선종 2(1085)에 제작된 것으로,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내용이 이두문이 섞인 금석문으로 새겨져 있어 국가와 사찰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주요한 자료입니다.

 

양산 통도사 봉발탑

영축산(靈鷲山)에 자리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3보사찰 가운데 한 가지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이며, 선덕여왕 15(646)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입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와 승복의 한 종류인 가사(袈裟),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모시고 창건하였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중요시되는 절이었습니다.

 

이 봉발탑은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입니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가운데·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입니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습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부처가 태어나 도를 닦고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입니다. 가로 151, 세로 233.5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팔상도는 모두 8폭으로 액자에 끼워 벽에 붙여 놓아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 영조 51(1775)에 여러 화가에 의해 그려졌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조선시대 불교 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 등 삼신불을 그린 삼신불도입니다.

가로 3.15m, 세로 4.6m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삼신불도는 3폭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고 그 왼쪽에 노사나불을, 그 오른쪽에 석가를 배치하였습니다. 주존인 비로자나불은 양 어깨를 감싼 통견을 입고,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의 손모양인 지권인을 하고 있어요.

 

비로자나불처럼 통견을 입은 노사나불은 양손을 위로 한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어요. 주존의 오른쪽에 위치한 석가여래는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쳤고,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어요. 노사나불과 석가여래의 아래에는 각각 두 명의 천왕이 있어 전체적으로 사천왕이 삼신불을 호위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 삼신불도는 영조 35(1759)에 임한, 하윤 등이 그린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석가,아미타,약사여래를 삼신불로 표현하였는데 비해 이 삼신불도에서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여래로 삼신불을 표현한 드문 예로서 미술사적으로나 불교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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